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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라라랜드 리뷰: 1998년에 마주친 세바스찬과 미아

by 심심은D 2023. 9. 8.

라라랜드 포스터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1998년, 캘리포니아

 카페테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를 꿈꾸는 미아, 그리고 정통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세바스찬은 우연히 서로를 몇 번 마주친다. 또 한 번 파티에서 마주친 미아와 세바스찬은 점점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서로에게 용기를 얻고 의지하며 각자의 꿈을 위해 도전한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시대

영화를 보기 전에 예고편을 보고는 이 영화가 1930-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이 영화의 배경이 1998년인 것에 놀랐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영화에는 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된 차를 모는 라이언 고슬링

 

 

이런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두 사람의 자동차이다. 두 사람의 자동차는 모두 1998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자동차들이다. - 한 대는 이미 단종 후, 한 대는 출시 이전이다. -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자동차는 각자의 성격이나 꿈과도 닮아 있다.

세바스찬은 힐끗 봐도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오픈 카를 몰고 다닌다. 특히 오프닝 장면 중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대시보드가 꽤 인상적이기도 했다. 영화 내에서 세바스찬의 차종은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구글에서 본 몇몇 리뷰를 살펴보면 1981년에서 1985년까지 생산된 뷰익 리비에라 컨버터블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된, 이미 단종된 자동차는 세바스찬과 닮아있다. 세바스찬은 텔레비전 드라마 보다는 '이유 없는 반항'처럼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세바스찬은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정통 재즈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는다. 그렇기 때문에 재즈에 현대적인 색을 입히는 것은 재즈를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미아는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몬다. 프리우스 1세대는 1997년 일본에서 출시되었고, 미국에 수입이 시작된 것은 2003년이다. 영화 속 미아의 자동차는 2004년에 출시된 2세대 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미아의 차는 현대적인 만큼, 대중적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다시 만난 파티에서는 수십대의 프리우스 중에서 미아의 차를 찾기 위해 고생 하기도 한다.

 

미아는 화면 속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오디션을 보러 가는 곳마다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지원자들을 마주친다. 사실 미아가 보는 오디션 자체가 비슷비슷한 플롯의 막장 드라마 조연 역할이기도 하다.

 

 

 

미아의 차와 아이폰

​그리고 미아는 당연히 아이폰을 쓴다.

서로의 시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서로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재즈를 싫어했던 미아는 세바스찬을 만나 재즈를 듣고, 또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배우를 꿈꾸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권유로 자신이 직접 극을 써 모노드라마 연극에 도전한다.

오로지 정통 재즈만을 고민하던 세바스찬은 미아를 만나서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둘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좋아하지 않던 대학 동기, 키이스의 밴드에 들어가, DJ 박스와 전자 피아노를 포함한 3개의 전자 악기를 동시에 다루는 퓨전 재즈를 연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느 한 쪽도 서로의 시대로 물들어 가지 못한다.

미아는 자신을 위해 일렉트로닉 재즈 밴드에 들어간 세바스찬에게 "왜 바라지도 않던 일을 하고 있느냐?"고 이야기한다. 너의 꿈은 그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세바스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바스찬도 자신이 바꾸어놓은 미아를 제대로 응원해주지 못한다. 세바스찬은 재즈 밴드의 잡지 사진 촬영 때문에 미아의 모노 드라마 초연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각자 두 사람의 엔딩

 

 

둘은 서로를 조금씩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였지만, 애초에 그들이 그랬듯이 여전히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못한다. 이제 미아는 힘겹고 외롭게 세바스찬의 시대를 살고 있고, 세바스찬은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은 미아의 시대를 산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두 사람.

결국 둘은 어느 한 사람의 시대로 함께 떠나지 않고, 98년을 함께 살지도 않는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떠나 각자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다.

미아는 모노드라마를 통해 얻은 캐스팅 오디션에서 발탁되어 성공한 영화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재즈 밴드로 투어를 다니며 번 돈으로 그렇게 원하던 정통 재즈바를 열었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에게 주었던 새로운 세계는 자신이 본래 살아왔던 세계를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발판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자신의 재즈바에서 우연히 미아와 조우한 세바스찬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지나갔던 일을 돌이킨다. 만약 레스토랑에서 미아가 건네는 인사를 받았더라면, 미아의 일인극을 보고 응원해주었다면, 미아와 함께 파리에 갔더라면 지금 둘은 함께 있었을 것이다.

 

꿈과 사랑을 그린 헐리우드 영화는 많았고, 둘이 헤어지게 되는 결론도 뻔하지만 이 장면으로 라라랜드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여운을 남긴다. 둘의 헤어짐은 피치 못할 일이 아니었다. 둘은 분명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