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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배경 지식: 유대인의 이동과 이주 정책

by 심심은D 2023. 9. 15.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에 대해 주로 다룬 문학 예술이나 영화와 달리 가해자에 초첨을 맞춰 사건의 흐름을 적은 기록물이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분리 정책과 학살 정책을 수행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재판 과정과 판결을 이 책으로 담았다. 유대인 분리 정책의 과정과 가해자들의 사고가 잘 나타나있어 누구나 한 번 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원문+번역의 난해함으로 인해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포스팅을 올린다. 


0. 배경지식 - 유대인 문제 

우선 책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유대인 문제가 시작된 배경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유럽 사람들이 유대인 이주나 학살이라는 정책에 찬성을 한 것인지 또 어떻게 유대인들이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것을 도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이스라엘 건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기원 전부터 특히 민족 이동이 많았다. 
특히 기원전 135년 민족탄압으로 유대인들은 아시아와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고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 땅은 빈터가 되었다. 

유대인과 무슬림은 남부 스페인과 중동아시아지역에서 공존하기도 했지만 1492년 스페인 이베리아 지역이 기독교화되면서 종교재판이 거행됬고 이교도인 유대교도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 후, 유대인들은 동유럽으로 이동해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 정착했다. 

 

Expulsion of Jews
s

 

드레퓌스 사건 (1894)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이 집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독일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섬으로 추방되지만, 이 후 이게 누명임이 밝혀진다. 
오스트리아 유대인이었던 Herzel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파리 취재 중 유대인에 대한 무시와 멸시에 크게 분개해 유대인 나라를 건국해 유대민족이 모여살아야 한다는 시오니즘 (Zionism)을 주장한다. 

여러 나라를 고민하다가 결국 팔레스타인 땅으로 다시 귀환하기를 주장했고, 이에 따라 유럽의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Aliyah 가 약 50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Dreyfus
1906년 드레퓌스는 다시 복권되고 레죵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발포어 선언 (1917)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적인 목적으로 영국 외무장관 발포어가 시오니즘 운동의 후원자였던 로스차일드 경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고 발표한다. 

 

유대인 이주 정책 (1930년대)

발포어 선언 십수년 후, 독일은 유대인의 재산을 압수하고 유대인을 국가 밖으로 추방시키기 위한 정책을 펼친다. 이것이 이후 유대인 학살로 이어지고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유대인 이주 정책이다.

하지만 정책 실상을 잘 몰랐던 시오니즘 운동가들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위해 (혹은 일부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신의 목숨과 다른 유대인들의 목숨을 거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치 정권에 유대인 명부를 넘겨주었고 독일 나치 정권이 훨씬 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을 집단 거주 지역으로 이주시키거나 학살시키는 데에 타의 혹은 자의로 일조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종전 후 유대인 약 600만명이 학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며 유대인에 대한 동정여론이 높아졌다. 발포어 선언국이었던 영국은 유대인 국가 수립에 관한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고, 미국은 UN에 본 책임을 넘겼다. 
UN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과 아랍 양국을 건설을 제안했지만, 본래 자신들의 땅이라고 여겼던 아랍인들은 당연히 이 제안을 거절했고 유대인은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을 건설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영토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1950~1980년대의 아랍인과 유대인의 전쟁에서 유대인이 잇달아 승리하며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국가로서 입지가 더 견고해졌다.

 

Israel Palestine Map
결과적으로 유대인 학살은 또다른 갈등과 전쟁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