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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리뷰 (5) 악의 평범성과 한나 아렌트

by 심심은D 2023. 9. 20.

 

아이히만의 처형

처형

아이히만은 사형을 집행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죽음으로써 독일의 청년들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느껴야 하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라며,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기엔, 자신이 온 세상이 이목을 집중하는 인물로 생을 마감한다는 데에 대해서 약간 자부심을 가진 것 같아 보였다.

 

아이히만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나치 정당의 선전 문구들, 장례식장을 다니면서 주어들었던 진부한 어구들을 남기고 처형을 당한다.

 

그런 아이히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한나 아렌트는 생각한다.

 

"아, 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생각과 표현이라고는 없는 사람이구나..."

 

책의 마지막 문장:

 

It was as though in those last minutes he was summing up the lesson that this long course in human wickedness had taught us-the lesson of the fearsome word-and-thought-defying banality of evil.”

 

그는 자기 인생 최후의 순간을 통해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길고 길었던 수업의 가르침을 요약해주는 듯 했다.

언어와 사고를 앗아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무시무시한 가르침을.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 악 또한 평범하다, 진부하다.

악의 평범성은 "악인"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악행"의 특성을 설명한다.

 

즉,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악행의 동기가 다른 어떤 행동의 동기보다도 시시하고, 식상하며, 평범하고, 진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재판하기 전에 아이히만이 원대한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거나, 유대인에 대한 증오에서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남긴 아이히만의 대답은 "그 일을 맡았기 때문에" 였다.

마치,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다. 배불러서 밥을 남겼다. 라는 말을 하듯.

 

"There was no sign in him of firm ideological convictions or specific evil motives. It was not stupidity, but thoughtlessness."

 

아이히만에게서 이데올로기 적인 확신이나 악한 동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렌트는 재판과 재판 자료를 보면서

아이히만이 1. 자신의 어휘를 구사하거나 2. 비판적인 사고를 하거나 3. 타인을 동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고, 이런 무능 (Incapability)이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아이히만은 늘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한 번도 본인의 업무 수행이 사회나 인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 사고의 문제 / 무의식의 문제

많은 사람들이 딱히 악한 동기 없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악한 집단 행동에 일조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비판적인 사고 능력 부족 만큼 가치 교육의 부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유대인 학살이라는 업무가 개개인의 사고 과정을 거쳐 옳고 그름의 판단이 필요하다면 그게 더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인간 생명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지키는 가치이고, 이것은 다른 어떤 가치와 저울질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히만은 "국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어떤 식으로도 가담해서는 안된다."라는 2가지 규범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이에 관해, 아이히만은 책에서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의 앞 부분에서도 나왔듯이 아이히만 외의 많은 나치 당원들도 생명이나 신체의 위협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유대인 소송과 학살 업무를 그만두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이들이 인권, 특히 유대인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히만은 물론 생각 없고 자기 표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유대인 학살업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본능적인 윤리 의식의 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공익 광고 - 아이들은 왜 때리지 않았을까?

아래는 오래된 이탈리아 공익 광고 영상이다.

 

어른의 말에 모두 시키는 대로 순진하게 대답하던 아이들이 "소녀를 때려봐라" 라는 말에 모두 "No"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아이히만보다 비판적 사고에 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여자를 때리면 안된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교육 받았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나서 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보다 어떤 가치들은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것으로 강하게 주입시키는 것이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다른 행동들과 똑같은 이유를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악행의 이유보다도 (나에게 주어진 일이기 때문에)

악행 자체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에 대한 무너뜨릴 수 없는 거부감이 있어야 하고 이는 아무래도 이성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된 잠재된 윤리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b2OcKQ_mbiQ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을 나는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조그만 나쁜 일이라면? 

내 직업에 열심히 일할수록 환경이 훼손된다면? 외모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면?

성과를 내기 위해 약간의 거짓말과 편법을 곁들이고 있다면?

 

우리 모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게 아직도 유대인 학살의 역사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이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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